미국, 모로코–알제리 사하라 분쟁 해결 가속…
워싱턴에서 고위급 협의 본격화
미국이 서사하라 문제를 둘러싼 모로코와 알제리 간의 오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중재 속도를 대폭 높이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최근 모로코, 알제리, 모리타니, 폴리사리오 대표단이 모두 참석한 고위급 회의가 열렸으며, 미국과 유엔이 공동으로 협상을 주도하면서 사하라 분쟁의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모로코 자치안’ 기반의 협상 틀을 공식화
이번 회의는 미국이 서사하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시한 핵심 원칙, 즉 모로코의 자치안(Autonomy Plan)을 협상의 기술적·정치적 기반으로 삼는 방향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2797호가 모로코 자치안을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유일한 정치적 틀”로 인정한 점을 강조하며, 협상 구조를 재설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스페인 매체들은 미국이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협상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정치적 설계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수십 년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유엔 주도 협상 방식에서 벗어나, 미국이 직접 협상 동력을 만들어내려는 전략적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알제리·폴리사리오, 사실상 협상 테이블로 끌려와
특히 이번 회의에는 그동안 독립 국민투표를 주장하며 모로코와의 직접 협상을 거부해온 알제리와 폴리사리오가 모두 참석했다는 점이 큰 변화로 꼽힌다. 이는 미국의 강한 외교적 압박과 지역 안보 환경 변화가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워싱턴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알제리가 “분쟁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해온 점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알제리의 안보 우려와 난민 문제 등을 협상 의제로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했다. 이는 향후 난민 귀환, 자치권 구조 설계 등 핵심 쟁점에서 알제리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포함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평가된다.
유엔도 미국과 보조…“자치안 기반의 심층 논의 진행
”유엔 서사하라 특사 스테판 데 미스투라 역시 이번 협상에 공동 의장으로 참여해, 미국과 유엔이 사실상 단일한 협상 프레임을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유엔 대변인은 “협상은 모로코 자치안을 기반으로 심층적으로 진행됐다”며, 자치안이 협상의 중심축이 되었음을 공식 확인했다. 다만 유엔은 여전히 “사하라 주민의 자기결정권 문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알제리와 폴리사리오가 요구하는 ‘자결권’ 의제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전략적 목표: 북아프리카 안정과 동맹 구조 재편
미국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에는 북아프리카 지역 안정화, 모로코와의 전략적 협력 강화, 그리고 알제리와의 관계 재정립이라는 다층적 목표가 자리하고 있다.
- 모로코는 미국의 핵심 안보 파트너로,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한 ‘평화위원회(Council of Peace)’ 창설에도 가장 먼저 참여한 국가다.
- 알제리는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에너지 자원, 사헬 지역 안보 문제 등에서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지역 강국이다.
- 폴리사리오는 알제리의 정치·군사적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미국은 알제리를 움직여야 협상이 실질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마드리드 회의에서 워싱턴 회의로…협상 구조의 ‘가속’
앞서 미국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동일한 당사자들을 모아 예비 협의를 진행했으며, 이 자리에서도 모로코 자치안을 기술적 기준으로 삼는 데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다. 워싱턴 회의는 이 합의를 공식화하고, 실질적 정치 협상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사하라 분쟁, 50년 만에 ‘해결 국면’ 진입하나
일부 국제 분석가들은 이번 협상 구조가 사하라 분쟁의 종식이 가시권에 들어왔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한다. 특히 최근 국제 여론과 유럽 국가들의 입장이 모로코 자치안 쪽으로 기울면서, 폴리사리오의 독립 노선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은 과제: 난민 귀환·자치권 범위·안보 협력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 사하라 난민(특히 틴두프 난민캠프)의 귀환 방식
- 자치권의 구체적 범위와 권한 배분
- 모로코–알제리 국경 지역의 안보 협력
- 사하라 주민 의견 수렴 방식(협의 메커니즘)
이러한 쟁점들은 향후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꼽힌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번 협상은 수십 년간 정체돼 있던 서사하라 문제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모로코와 알제리, 그리고 폴리사리오가 모두 참여한 가운데, 자치안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협상 구조가 자리 잡을 경우, 북아프리카의 지정학적 지형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